다이어리 첫 장에 휘갈겨 쓴 일정은 몇 번이고 다시 쓰이다 마지막 장의 격자무늬에 갇혀버리고,

근사한 계획들은 아쉬움과 함께 미래의 나에게 양보해야만 했습니다. 

한편으론

나와,

나를 둘러싼 세계와,

그 세계 속을 채우고 있는 사람들에 대해서

새로이 배우기도 했습니다.

시대 속 우리들의 관계는

필연적으로 느슨해져야 했고

피치 못하게 더 밀접해졌습니다.

있을 자리를 찾아 분투하거나

영역을 지키기 위해 안간힘을 쓰고 있는

스크린 속 친구들과의 대화는

매번 상황이 나아지면 보자는 말로 끝을 맺습니다. 

가족과 함께 보내는 시간이 늘며 얻은 것 중 하나는

평생의 믿음에 대한 배반.

지겨울 정도로 서로를 잘 알 수밖에 없다고,

속속들이 알기에 더 깨달을 것도 없다고 믿었는데,

친구보다, 연인보다 그들을 더 모르고 있었던 것만 같아 부끄럽기만 합니다.

각자의 어려움을 겪어내는 동안

그 어느 때보다 많은 이가 비누를 이야기하던 순간들이 있었습니다.

“가장 많은 인류를 구한 발명품은 비누다”

늘 비누를 생각하던 우리는

마음 속 비누의 자리를 흩뜨리지 않으려 애를 쓰며

비누를 만드는 우리와

비누를 사용하는 모든 이들과

비누의 쓰임, 비누가 세계에 미치는 영향 같은 것들을

깊이 고민했습니다.

우리가 무엇을 구할 수 있을지

어떤 멋진 것을 만들 수 있을지

큰소리로 외치는 것은 너무나 두려운 일입니다.

그럼에도 불구하고 우리는

우리가 지키고 싶은 인간의 존엄과

우리가 사는 세계를 향해 기울어진 어깨에 대해서

나직한 목소리로

온 마음을 담으려고 합니다.

사랑과 존경을 담아

우리의 일인 비누로부터

한아조의 PCE를 이야기합니다.